글또를 시작하며
이래 저래 헬스를 한지 2년 정도가 되었다. 운동에 대한 열정과 무관하게 내가 어느 정도 무게를 들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다칠 위험이 있는지 무엇이 약점인지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소 긴 휴식기가 있었다면 바로 예전의 최고치로 도전하기 보단 서서히 중량을 늘려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다치기 때문이다.
운동은 이렇게 하는데, 글을 쓰거나 공부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자주 쓸 때 처럼 쓸 수 있겠지', '책을 자주 읽을 때 처럼 읽을 수 있겠지', '퇴근하고 매일 같이 뭔가 공부할 때 처럼 다시 바로 할 수 있겠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임시저장 된 아이디어들만 가지고 어느 덧 제출일이 와버렸다.
글또 오리엔테이션에서 언급 되었던 신규 참여자의 패턴을 정확히 따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에라도 핸들을 틀어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아홉 기수에 걸쳐 나온 운영진의 정성 어린 가이드에 따라 첫 글은 다짐글을 써보자 한다.
1. 자주 겪는 안티 패턴
1.1 너무 큰 바램
요새는 회사 일에 큰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열정만 느끼지 못하면 다행이지만 그런 열정을 연료로 일하는 타입이기 떄문에 일 자체의 능률 또한 저하되고 심리적으로도 쉽지 않은 상태 인 것 같다.
길든 짧든 지금까지 다녔던 4군데의 회사와 그 전의 이런 저런 조직에서 내가 의욕이 넘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패턴이 있는 것 같다.
- 스스로 생각하는 목표가 상대적으로 큼(시스템의 전반적인 개선, 새로운 서비스 개발 및 운영 등)
- 현재 내가 가진 리소스(시간, 자본 등)에서 해결하지 못함
-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압박감을 계속 느끼며 스트레스가 누적됨
- 어느 새 회복할 수 없는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목표를 포기하게 됨
- 포기 이후에 방 황의 시간을 갖다가 다시 회복이 되면 1로 돌아감
1.2 자신에게 가혹함
회사에서 지원하는 심리 상담을 다녀 왔을 때도 들은 이야기이지만 스스로에게도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경우가 많다.
내 스스로는 '약간 용기를 북돋을 의도로 높게 쳐주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정한 평가 정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평가보다는 응원의 비율을 조금 높여 보면 좋을 것 같다.
2. 안티 패턴 분석을 기반으로 한 다짐
위의 두 가지 측면을 보자면 내가 글또를 곁들인 6개월을 만족스럽게 보내기 위해서는 '평소보다는 아주 작은 목표'와 '아주 작은 목표를 달성했을 때, 평소보다 더 큰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해야만 이전과는 다른 사이클을 가져가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2.2 내가 가지고 있는 리소스
- 아주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나의 리소스는 어느 정도일지 우선 파악이 되어야 한다. 평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아래와 같다.
- 오전(1시간 / 30분은 운전하며 listening)
- 오전에 30분 운전
- 오전 1시간 정도
- 하루 계획
- 점심(30분)
- 점심 30분 정도
- 독서
- 점심 30분 정도
- 저녁(4시간 / 1시간은 운전하며 listening)
- 퇴근 후 2시간
- 학습
- 저녁 1시간 운동
- 저녁 1시간 성찰/일기(주간 KPT / 일간 4L / 감사일기)
- 퇴근 후 2시간
- 오전(1시간 / 30분은 운전하며 listening)
- 운전하면서는 보통 개발 세미나나 인터뷰 등을 듣는다. 발표를 들을 때는 내가 같은 주제에 대해 발표를 한다고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들어보자.
- 혹시나 아내가 임신을 한다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겠지만, 아이가 태어나지는 않은 것이니 당장에 아이가 생기더라도 향후 1년 정도는 이 시간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다.
2.3 6개월 간의 작은 목표
2.3.1 1주일에 한 편의 글
- 아주 작은 목표만 가져보자. 원래 OT 후기에 작성한 목표는 '1주일에 한편의 글을 작성하기' 였다. 다소 퀄리티를 희생하더라도 이 목표를 채우는 방향으로 가보자.
- 2주를 고민해도 어차피 1주일을 고민하는 것과 글의 퀄리티가 현재로서는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내가 글을 쓰는 스킬이 일단 늘어야, 머리속에 모호하게 남아있는 아이디어들이 더 원활히 빠져나올 것이고, 그래야 더 만족스러운 퀄리티의 글이 생산이 될 것이다.
- 글감 종류는 기술적인 것들과 에세이가 있다
- 기술적으로, 회사에서는 레거시 개선이라는 미션을 내가 해낼 수 있는지 여러 실험을 해볼 예정이다.
- 테스트 코드를 만들어가는 다양한 시행착오들
- 개발 표준을 정립해 가는 과정
- 책이나 강의를 정리하는 것은 별도에 공간에 작성해볼 요량이다. 블로그 글이라기 보다는 요약/정리 정도에 가까운 행위인 것 같아 성격이 좀 다르다고 판단했다.
- 블로그에는 이를 종합하여 누군가를 가르치는 목적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혼자서 만드는 것과 달리 사용자가 생기고, 서비스를 멈출 수 없고, 함께 일해야 하고,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바뀌는 것들을 알려주는 글을 작성하는 것이다.
- 에세이는 보통 많이 논의 되는 이직/퇴사, 피어프레셔, 조직문화 등에 대한 생각들을 적어볼 수 있겠다.
- 기술적으로, 회사에서는 레거시 개선이라는 미션을 내가 해낼 수 있는지 여러 실험을 해볼 예정이다.
2.3.2 송파또를 주최/참여하기
- 글또 슬랙을 보며 느껴지는 인싸스러움에, 극단의 내향인에 가까운 나는 읽는 것만으로도 약간 지치는 경우들이 있었다. 거기에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려는 생각까지 하니, 막상 무슨 이야기를 할까 싶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의 대학시절 절반을 투자했던 독서 동아리는 매번 모임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회원들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는 것의 연속이었다. 회사 생활 때문인지, 나이를 먹어서인지 점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지고 있는 것 같다.
- 일단 다시 몇번 찍먹으로 사람들을 만나보고, 감당 가능하면 슬슬 네트워크를 늘려나가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사는 곳이 문정 쪽이니 이 근처에서 그냥 가볍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송파또를 활용해보고자 한다.
- 10기 기간 동안 1번 이상 주최 혹은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2.3.3 블로그 테마를 바꾸지 않기
- 도큐 사우루스를 쓰고 싶은 갈망이 있지만, 6개월 간은 글만 쓰고 블로그 테마를 바꾸려는 것에 아예 시간을 투자하지 말자. 매번 블로그 세팅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목표로 명시를 해둔다.
2.4 스스로에 대한 격려
- 더 낮은 평가 기준을 가지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완벽에 너무 집착하면서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멘탈을 온전한 정도 선에서 지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한 연습으로 몇 자 적어본다.
- 2019년 7월에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만 5년이 지났다. 이 바닥에서 포기히지 않고 5년간 버틴 것도 잘했지만, 그냥 버틴 것도 아니고 가는 회사 마다 신뢰를 받으면서 일했던 경험을 잊지 말자.
- 아직까지 내가 무엇인가 배우면서 힘들어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도리어 아무 부족함도 느끼지 않고, 아무런 배움의 고통이 없는 상태보다는 훨씬 발전적인 상태라는 것을 기억하자. 더욱이 나와 같은 열정에서 연료를 얻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스스로를 칭찬해주자.
3. 마치며
엄청나게 구체적인 목표는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너무 제한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넓게, 유연하게 생각이 뻗어 나갔으면 하기 때문이다.
요새는 행복에 대해 관심이 많다. 어떻게 삶을 일궈 나가야 행복한 것일지가 가장 큰 관심 사이다. 내 마음이 진정으로 건강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더 이상 내달리기 어려운 것 같다. 돈을 더 벌거나,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으려고 노력해 왔던 것들이 도리어 나를 갉아 먹는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내가 뛸 수 있을 만큼의 적정한 강도로 뛰어야 한다. 마치 헬스를 할 때 처럼 말이다.
6개월이면 헬린이가 선수가 될 수 있는 기간은 아니다. 6개월 만에 평생을 가져온 습관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보다는, 익숙하게 건드려보지 않았던 근육들을 써보는 정도의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